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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의 말 / 함 종 대

샬레 2024. 1. 11. 18:53

 
 

가장 낮은 곳의 말 / 함 종 대

 
 발톱은 발의 말이다
 발은 한 순간도 표현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나는 낮은 곳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짓눌리거나 압박받는 곳에서 나오는 언어는 
어감이 딱딱하다
그렇다고 낮은 곳 아우성이 다 각질은 아니어서
옥죈 것을 벗겨 어루만지면 이내 호응한다
늦은 퇴근 후 양말을 벗으면
탈진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발가락들이 하는 말을 더럽다고 외면한 날이
많았다
안으로 삼킨 말이 발등으로 통통 부어 오른날
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에게 내미는 말을
 나는 야멸차게 잘라내며 살았구나
오늘은 발을 개울에 데려간다
물은 지금 머무는 곳이 가장  높은 곳이라
말하지 않아도 속내를 아는 양
같은 족을 만난 듯 온몸으로 감싸 안는다
발이내어 놓는 울음인지 물의 손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감정이 봄나무에 물오르듯 
올라온다
머리를 낮게 숙여 두 손으로 발을 잡아 본다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는지 볼까지 흠뻑 젖었다
개울이 발의 울음 소리까지 보듬는 걸 보면
오래전부터 산의 발등이나
나무들의 발가락을 어루만져 왔음을 
짐작할수 있다
그런 개울도 울컥거릴 때가 있어 강에 
발을 담근다
바다는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듯 하구를 보듬는다
장사가 어려워 가게를 폐업하던 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물의 등을 철석철썩 쓸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