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풀떠들석 팔랑나비의 작명가 에게 / 손택수
수풀도 좀 점잖고 싶을때 있지
나비도 날개를 접고 곤히 쉬고 싶을 때 있지
마냥 떠들썩 팔랑거려야 하니 얼마나 고역인가
하긴 나도 내 이름이 싫을 때가 있으니까
집 없는 이름 한가운데 왜 집을 가졌는지
그래도 집 택 자 덕분에
시집이라도 몇 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수풀떠들썩팔랑 나비 이름 부르면
잠자리채를 들고 곤충채집을 가던 소년이 보인다
면바지에 묻은 풀물처럼 잘 지위지질 않는 여름
나는 여전히 발꿈치를 들고 있다
잡았다 싶은 순간
나비는 늘 저만치 멀어진다
그때 내가 잡고 싶었던건 나비가 아니라
더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저물도록 떠들썩 팔랑거리던 그 환한 거리가
아니었을까
이름 속에 들어올 수 없는 떨림을 알아서
앉은 나비를 품고 두근거리는 수풀과
아닌 척 거리를 좁히는 기척에 골똘해진 나비와
작명가의 숨결이 실려 있는 말
수풀떠들썩 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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