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상자 / 이 동 호
아이가 삼촌으로부터 상자를 담아 안는다
상자 포장지 위 심장 모양으로 매듭을 묶은 까만 리본
이 빠른 박동으로 크게 몇 번 두근거릴 것 같은
이 상자를 언제쯤 풀어야 하나
발신자 표시도 없는 상자의 까만 리본을 잡아 당기면
거기
아버지가 가득 들었을 것이다
자동차가 국도를 타고 한참을 달려가다
이 풍진 세상으로 들어선다
비포장도로 주변으로 아무렇게나 늘어선 나뭇가지 어
린 꽃잎마다 분진 가득하고
먼지를 가득 덮어쓰고도 꽃들은 한 계절
꽃일 것이다
아직은 추운계절이었기에 앞차가 일으킨 먼지를 뒤차
가 끌어다 덮는다
차는 아버지가 살았던 유년을 돌아
외딴 마을에 도착하고
차안에서 잠시 잠들었던 아이가 일어나 유채 만발한 언
덕을 오른다
아이보다 앞선 상자가 아버지의 아버지를 거슬러 오른다
상자가 열리자 아들에게 안긴 가루가 된 아버지가
아이를 보며 웃는다
가루가 된 두 팔을 들어올려 대견하게 자란 아이의 어
깨를
마지막으로 톡톡 두드리고 사라진다
거대한 눈물 한 방울이 서산 너머로
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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