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김 완 수
레몬은 나무 위에서 해탈한 부처야
그렇잖고서야 혼자 세상 쓴맛 다 삼켜 내다가
정신 못 차리는 세상에 맛 좀 봐라 하고
복장을 상큼한 신트림으로 불쑥 터뜨릴 리 없지
어쩌면 레몬은 말야
대승의 목탁을 두드리며
히말라야를 넘던 고승이 중생의 편식을 제도(濟度) 하다가
단것 단것 하는 투정에 질려
세상으로 향한 목탁의 문고리는 감추고
노란 고치 속에 안거한 건지 몰라
레몬 향기가 득도의 목탁 소리 같잖아
레몬은 반골을 꿈꿔 온게 분명해
너도 나도 단맛에 절여지는 세상인데
저만 혼자 시어 보겠다고
삐딱하게 들어 앉아 좌선할 리 없지
가만 보면 레몬은 말야 황달든 부처가 톡 쏘는 것 같아도
내가 단것을 상큼하다고 우길땐
바로 문 열고 나와 눈 직끈 감기는 감화를 주거든
파계처럼 단맛과 몸 섞은 레몬수를 보더라도
그 둔갑을 변절이라 부르면 안돼
레몬의 마음은 말이야
저를 쥐어짜면서 단맛을 교화하는 것이거든
레몬은 독하게 적멸하는 부처야
푸르데데한 색에서 단맛을 쫙 빼면
모두 레몬이 될 수 있어
구연산도 제 가슴에 맺힌 눈물의 사리 일지 몰라
레몬이 지금 내게 신맛의 포교를 해
내 거짓 눈물이 쏙 빠지도록
2015년 광남 일보 신춘 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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