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배 /박은영
일찍 철이든 나는
강철로 만든 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세상살이는 접는 법을 배우는 과정
입가와 눈가, 미간 사이
누군가가 계획한 길의 골이 깊어서
밤은 오고
이슬은 내렸던 것인가
점선으로 표시해둔 길을 기억하는
한 장의 몸
답습하거나 전이된 이상은
원래 내 것이 아니라 기우뚱거렸다
난파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갔으나
물결 넘어 물결이었다
젖은 속옷은 파랑과 맞서던 돛
뒤집힐 것 같은,
뒤집어 보여 주기도 했던 접은 몸을 펼친다
안간힘으로 구겨진 지도 한 장
주름을 벗어난 나는
공중으로 흩어지는 헛기침보다 가볍게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윤극영의 (반달) 가사 중에서 (1924년작)
'유명시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브런치 / 이 동 호 (0) | 2023.07.31 |
---|---|
백수현상(白水現象)/ 박은영 (0) | 2023.07.31 |
만두 / 박은영 (0) | 2023.07.17 |
빅풋/ 석민재 (0) | 2023.07.17 |
멸치 / 김기택 (0) | 2023.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