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시 모음

브런치 / 이 동 호

샬레 2023. 7. 31. 11:10

브런치 / 이동호

 

창밖에 가득한 저 하루를 손가락으로 비비듯 만지면 참

보드랍지

커피 원두를 미세하게 간 것 같은 오늘 하루가

나는 참 좋아 

이런 하루를  티스푼으로 한 숟갈 떠서 찻 잔에 담아두

었어 

가스렌지 위 주전자 속에는 오늘 하루가 뜨겁게 끓고

있고

나는 오후와 저녁 사이에 담겨 조금 식어 있어

창가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한 잔의 하루를 혼

자 홀짝이곤 하지 

나를 조금 기울이면 내 몸의 미세한 틈이 벌어져

몸 밖으로 내가 조금씩 흘러내리지

나는 지금 창가에 고여있어 창가는 찻잔처럼 수심이

깊지 

세상에는 수평선이 있지만,  나에게는 한계선이 없어서

나는 자주 나를 넘치곤 하지 오늘 나는 쓴맛이야

티스푼으로 찻물을 열심히 휘저어도

소용돌이치다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는 한 잔의 쓴맛

실수로 엎질러놓은 햇볕이 얼룩처럼 거실 바닥에 묻어

있어

걸레로 햇볕을 닦아버리면 어두운 밤은 오지

창밖에 넘칠 듯 받아놓은 저 한 잔의 어둠은 도대체 무

슨 맛일까

나는 창문을 열고 입술에 어둠을 조금 축이지

이 지독한 쓴맛 때문에 각설탕 같은 기억 하나를

입안에 넣고 빨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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