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시 모음

바닥경전 /박해림.서울역 석실고분 / 하린

샬레 2023. 6. 12. 16:22

남들이 다 쓴것 같아요 무엇을 써야 하나요

 

바닥경전 / 박해림

 

엎드려 보아야 

온전히 몸을 굽혀야 판독이 가능한 典( 법전 ) 이 있다

서 있는 사람의 눈에 읽힌 적 없는

오랜 기록을 갖고 있다

묵언의 수행자도 맨발의 현자도 온전히 엎드려야만 

겨우 몇 글자를 볼 뿐이다

어느 높은 빌딩에서 최첨단 확대경을 들이대고

글자를 헤아리려 들었지만

번번히 실패 하였다

일찍이 도구적 인간의 탄생이후

밤새 달려야만 수평선을 볼 수 있다고 밑게 되면서

바닥은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졌던 것이다

온전히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울긋불긋 방언을 새겼던 것이다

.............................................................................................

 

 

 

서울역 석실 고분 / 하린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서울역 돌방식 무덤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면

누군가 발로 툭 건드리자 덮고 있던 신문지 관이 열렸다면

세상에 공개된 남자의 얼굴이 낯선 부족처럼 느껴졌다면

그는 분명 전사임에 틀림없다

치열한 영역 다툼으로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고

온몸에 피 멍이 솟았다면

군용잠바 왼쪽 주머니에서 선사시대의 사진이 발견되었다면

중년 여자와 어린 딸이 박제되어 있었다면

그가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병속에 이물질은

분명 전투에서 패배한 자들이 자주 찿는 독극물이다

바지 주머니를 뒤질때 예상대로 복권 한장과

폐쇄된 사냥터에서 쓸수 있는 무료 배식권이 나왔다면

그는 분명 부족의 깨끗한 미래를 위해 제거된 무녀리다

관리자들은 관을 연 뒤 한 시간 만에 결론에 도달한다

"10년 만의 한파 신원 미상의 남자 하나 얼어 죽음"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가 이런 보고서를 봤다면

분명 당신은 죽은 남자와 같은 연대기에 사는 공복이다

 

박해림 시인의 바닥 경전은 노숙자를 바닥의 경전을 읽는 존재로 

인식하여 내밀하게 그 의미를 들여다본 작품이고

하린의 {서울역 석실고분}은 대리석으로 마감 처리된 지하 서울역을 석실고분으로

상상하여 노숙을 하다 죽은 사람을 냉철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 여기 늦가을 노을이 깔리는 강이 하나 있다고 치자 그것을

암 선고를 받은 어떤 화자가 바라보았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그 강엔

고름이 흐를 것이다 이번엔 이별을 맞이한 화자가 그 노을 을 보았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그 강 한 가운데엔 철조망이 쳐져 있을 것이다

그것 처럼 고정된 현상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은 개벌 화자의 태도로 현상에

접근 했기 때문이다

 

 

 

'유명시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미줄 / 이 동 호  (0) 2023.06.27
노팬티 / 이혜미  (0) 2023.06.27
샌드위치맨 / 신철규  (0) 2023.06.18
상처 / 김해준  (0) 2023.06.18
소주병 / 공광규  (0) 2023.06.10